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일)을 생기게 한 석가모니는 누굴까??

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일)을 생기게 한 석가모니는 누굴까??

2023. 5. 26. 20:38세계사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한자어로 석가탄신일입니다. 이 날은 말 그대로 석가모니, 즉 불교를 창시한 고타마 싯다르타가 탄생한 날입니다. 그렇다면 석가탄신일을 생기게 한 석가모니는 도대체 누굴까요??
 

석가모니는 누구??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잘 알려진 고타마 싯타르타는 기원전 6세기 경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 위치한 샤카족의 작은 나라 카팔라의 왕 슈도다니와 마야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머니 마야 부인은 상아가 여섯 개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선 임신했습니다. 마야 부인은 당시 풍습에 따라 친정인 천비성(데바 다하)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룸비니 동산에서 탐스러운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서 석가모니를 낳았다고 전해집니다.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으며 그후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마야 부인은 임신 중 무리해서 여행을 나간 게 원인이 되어 그 후유증으로 출산 일주일 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후 이모 마하파자파티가 사별한 슈도다나와 결혼하여 어린 석가모니를 돌보았습니다.
 
이후 자란 석가모니는 일곱 살 때에 5백여 명의 샤카족 귀족 집안의 자제들과 함께 처음으로 박사 비사밀다(비슈바미트라)를 스승으로 브라흐미 문자와 카로슈티 문자를 배웠으며 이듬해부터 외삼촌 크샨티데에게서 칼과 활, 창과 방패 등의 무기 사용법과 각종 무술, 코끼리와 말 등을 잘 기르고 조련하는 기술, 수레와 마차 타는 법, 군사 지휘, 연설로 상대 제압하기 등의 무예를 배웠다고 합니다.
 
그 후 12살 때 카팔라의 태자로 책봉되었고 태자로 책봉된 해에 카필라 왕국에서는 농경제 파종식을 거행했는데, 이때 불교의 경전인 본생경과 불본행집경에는 농경제 의식에서 석가모니는 신분의 고하와 생사의 먹이사슬이라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특히 생물이 남을 멸했으나 그 생물 역시 불멸을 얻지 못함을 보고 전전(展轉), 돌고 도는 생사의 허망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디다.
 
그러던 중 석가모니가 네 개의 성문에서 각기 인간의 생로병사를 목격하고 그의 일생 처음으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문유관이라는 신비한 일을 겪습니다. 이 일로 석가모니는 출가하기로 결심을 하고 먼저 부왕 숫도다나를 찾아가서 뜻을 밝혔다. 아무리 속세와 연을 끊는 마당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자신을 보살펴 기르신 부모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숫도다나 왕은 말렸지만 결국 포기합니다. 
 
출가한 뒤에 석가모니는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고된 삶과 마주했습니다. 그간 일국의 태자로 살아온 석가모니에게는 궁궐 밖에 세상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일주일 동안 스스로 자신이 찾는 문제의 해답을 얻으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스승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노마 마을에서 바이샬리 방면을 향해 간 석가모니는 그 부근에서 수행하고 있던 바르가바(Bhagava) 선인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는데, 바르가바는 육체적인 고행을 통해 순수해지고 고상해진다고 주장하는 철저한 '고행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바늘방석에 앉아 있거나, 타오르는 불길 옆에서 뜨거움을 견디거나, 하루 종일 물구나무를 하고 서 있거나 종일 한쪽 발로만 서 있거나 태양 아래에서 알몸으로 명상을 하거나, 쇠침으로 자신의 살을 뚫는 등의 혹독한 고행을 하고 있었고 석가모니도 그 틈에 끼어서 고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눈이 움푹 들어가고 몸은 야위어 갈비뼈가 앙상히 드러날 정도의 고행을 행했음에도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고 결국 그곳을 떠나 마가다 왕국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석가모니는 훗날에 자신에게 귀의하고 평생 후원자가 될 빔비사라 왕을 만났습니다. 그후 여러 스승을 만났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석가모니는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내가 찾는 진정한 깨달음을 구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에 석가모니는 서남쪽으로 나이란자라 강이 흐르는 우루벨라 마을의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고행림으로 갔고 그곳에서 다시금 고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6년간 고행을 하고도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고행 끝에 육체의 욕망 때문에 수행을 포기하거나 정신이 흐려지지 않을 정도까지 이르기는 하였으나 그 너머로는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네란자라 강 옆의 나무 아래에서 수행할 때 강을 지나가던 배에서 어느 악사(樂士)가 제자에게 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녀석아. 그렇게 줄을 팽팽하게 하면 끊어지지 않느냐?", "이 녀석아. 그렇다고 줄을 너무 느슨하게 하면 소리가 안 나지 않느냐?" 이때 싯다르타는 중도(中道)를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석가모니는 육체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의 힘을 잘 활용함으로써 인간의 고뇌를 해결할 수 있으리란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이에 석가모니는 고행을 끝내고 고행림을 나와서 우선 묘지에 흩어져 있던 망자의 수의 조각을 주워 와서 빨아 입었습니다. 석가모니는 강가에서 몸을 씻은 뒤 근처에 있는 나무 밑에 앉았는데 마침 지나가던 수자타라는 소녀가 이 모습을 보고 우유죽을 공양하자, 석가모니는 이를 받아 먹고 힘을 차렸습니다. 그 후 목욕을 마친 석가모니는 지금의 인도 가야 시 교외에 있는 부다가야에 이르러 스바스티카라는 이름의 나무꾼으로부터 그가 베어둔 풀을 얻어다 유명한 보리수 아래에 이르러 나무 둘레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동쪽 아래에 그것을 깔고 앉았다. 지금의 인도 가야시 교외에 있는 부다가야입니다.
 
이후 석가모니는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설파하다가 흉년으로 인해서 병을 얻어 80세에 나이로 열반하였고 그 제자들이 모여 석가모니의 말씀을 정리하니 이것이 불교의 시작입니다. 이후 비단길을 따라 동아시아로 전파된 불교는 우리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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