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한 역사적 이유!! 영국의 희대의 부동산 사기 맥마흔 협정과 밸푸어 선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한 역사적 이유!! 영국의 희대의 부동산 사기 맥마흔 협정과 밸푸어 선언!!

2023. 10. 21. 02:01세계사

요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공격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최후통첩을 하며 가자지구에 진입해 군사작전을 펼칠 것이라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도 확전 가능성을 언급하며 맞서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전쟹을 벌이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슬람 문화권의 한복판에 유대교 국가가 생겼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영국이 벌인 역사상 희대의 부동산 사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한 역사적 이유인 영국의 희대의 부동산 이중계약이자 사기인 맥마흔 협정과 밸푸어 선언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영국이 벌인 역사상 희대의 부동산 사기인 맥마흔 협정과 밸푸어 선언!!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영국이 벌인 역사상 희대의 부동산 사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우리는 그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 이후 유럽에 기독교가 펴지자 유대인들은 차별과 핍박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유도한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고 예수를 사이비로 몰았기에 기독교가 절대적인 가치였던 유럽에서는 유대인을 거의 역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이는 이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자유와 인권을 중요시하는 시점에서 유럽 각국의 정부들은 유대인에게 공민권(군주국의 신민)과 시민권(공화국의 시민)을 부여하면서 가시적으로 핍박과 차별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근 1800여 년 넘게 이어진 반유대주의 감정이 그리 쉽게 사라질 리 없었습니다. 특히 산업화로 소외된 농민과 도시 빈민들은 유대인의 이미지를 자신을 착취하는 악덕 지주나 부르주아와 연결시켰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극우세력은 대중 사이의 만연한 반유대주의 감정을 적극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했기 때문에 사태는 더더욱 악화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가 제정 러시아에서 포그룸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유대인 학살과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대인들을 경악하게 만든 사건은 프랑스에서 벌어진 드레퓌스 사건으로 1894년에 프랑스 정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파이 누명을 덮어씌워 종신형을 때려버린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기독교인들과 함께 동화되어 살려고 노력하던 유대인들은 아무리 자신들이 기독교 중심의 주류 사회에 융화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유대인이라는 낙인을 지울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들었고, 이럴 바에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살려서 우리들끼리 모여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하는데 일조헀습니다. 마침 이 사건을 취재하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기자인 테오도르 헤르츨은 유대인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 건설을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전 유럽의 많은 유대인들이 여기에 동감하면서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신께서 자신들에게 고대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 가라고 명령했던 일명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즉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국가를 건국하자는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헤르츨은 1896년 <유대 국가>(Der Judenstaat)라는 저서에서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들의 민족 국가를 재건할 것을 역설하고 결국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듬해인 1897년 시온주의자 세계대회(ZO)의 수립으로 점차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어 나갑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습니다. 유선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튀르키예 민족의 국가인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으며 로마 제국 이후 이슬람 제국들에게 정복당하여 무슬림 문화권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본력이 탄탄한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해 1903년 헤르츨은 영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대신 우간다에 유대인들의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은 어떻느냐'라는 제안을 받자 비교적 긍정적으로 검토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04년 헤르츨은 심장병으로 사망합니다. 그의 뒤를 이어 유대인들의 수장이 된 저명한 화학자이기도 했던 하임 바이츠만은 '오로지 조상들이 살았던 팔레스타인만이 우리들의 터전이 될 수 있다.'라며 영국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이었던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합니다.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과 적국이 되면서 하임츠만의하임츠만의 주장이 탄력을 받았고 여기에 힘을 보탠 것은 열성 시온주의자였던 당시 영국 내무 장관 허버트 세뮤얼이었습니다. 이어서 1916년 영국은 동맹국이었던 프랑스, 러시아 제국과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분할한다'는 내용의 비밀 협정을 체결합니다. 이 비밀 협정에 의거하여 팔레스타인 일대는 영국의 관할로 들어오는 것이 계획되면서 헤르츨과 하임츠만의 주장이자 유대인들의 염원인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국가를 건국하자는 시오니즘 운동의 주장이 점차 현실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장기화로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 정부는 로스차일드 가문 등의 유대인 자본가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전쟁의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 정부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국가를 건국하고 싶은 유대인 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마침내 1917년 11월 2일 영국의 외교부 장관인 아서 밸푸어의 명의로 당시 영국 내 유대인들의 대표자 격이었던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가 공식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본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 지지를 표하며 이를 성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팔레스타인에 거하는 비 유대인의 시민적 그리고 종교적인 권한에 대해, 또는 타국에 거하는 유대인의 정치적인 상태에 대해 아무런 편견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밸푸어 선언 입니다. 이 선언으로 영국 정부는 로스차일드 가문 등의 유대인 자본가들에게 막대한 전쟁자금을 빌렸고 하임츠만을 비롯한 유대인 지도자들도 전반적으로는 숙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의 수 역시 급증합니다. 이렇게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유대인 국가가 아무런 문제 없이 건국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진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 상황이 역사적으로 펼쳐집니다. 바로 영국 정부가 불과 1년 전인 1915년,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랍인들에게도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 민족의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밸푸어 선언과 똑같은 내용의 약속을 맺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외교관인 헨리 맥마흔은 메카의 하심 가문 아미르인 후세인 빈 알리와 서로 서신을 주고 받음으로서 레바논, 시리아 서부를 제외한 중동 지역 오스만 제국의 영토의 독립 지지를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후세인 맥마흔 협정입니다.

 

이 협정을 통해 영국 정부는 오스만 제국의 붕괴 이후 아랍 지역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워주는 것을 약속하면서 당시 적국이던 오스만 제국의 뒤통수를 치라고 독려와 지원을 했고, 이에 아랍인들은 이것을 믿고 1916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로써 영국의 역사상 희대의 부동산 사기극이 팔레스타인 지방에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사실 영국 입장에서 아예 할 말이 없던 것은 아닌 게 맥마흔 협정에 따르면 '전후 아랍인들의 국가에서 시리아 일대는 제외한다.'라고 적혀 있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시리아 일대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는 애매모호했지만 팔레스타인 일대 역시 시리아 일대로 보자면 볼 수 있는 범주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영국이 이 협정을 맺은 이유는 영국의 입장에서 골칫거리인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아랍인들을 이용했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맥마흔 협정의 내용은 성공하여 오스만 제국이 1922년 멸망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영국은 아랍인들과의 약속은 물론 유대인들과의 약속도 지킬 마음이 없었습니다. 영국은 1916년 프랑스와 러시아 제국과 함께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면 어떻게 땅을 나눠먹을지에 대해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비밀리에 맺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 협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즉 현재의 이스라엘 지역 정도를 공유하고 모든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직접 지배해 버리기로 했습니다. 즉 영국은 그야말로 보증금만 받고 결국 자기 땅으로 하겠다는 전형적인 부동산 사기의 표본인 삼중으로 계약을 맺어 국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포석이었습니다.

 

그러나 밸푸어 선언이 발표되자 아랍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후세인 맥마흔 협정에서 말한 '시리아 일대'가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입씨름이 벌어졌으며, 아랍인들은 영국의 배신을 규탄하면서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승인할 수 없다는 의지를 단호히 표출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역사가 대차게 꼬여버리기 시작하는데, 벨푸어 선언 20일 뒤인 11월 23일, 러시아 제국을 뒤엎은 볼셰비키들이 공식 기관지인 프라우다에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공개해 영국의 희대의 부동산 사기를 만천하에 까발린 것입니다. 안 그래도 밸푸어 선언 이후 20일 동안 그래도 영국이 괜찮은 국가겠지라며 협상을 생각하던 아랍인들은 몇 술 더 뜬 삼중계약의 진실을 알고 경악했고, 유대인 지도자와 자본가들도 동요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이 벌인 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희대의 부동산 사기는 대차게 꼬여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자 영국은 이젠 아예 오스만 제국에게 협상국으로 전환한다면 팔레스타인을 오스만 제국에게 보전할 것임을 타전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밸푸어 선언과 맥마흔 협정은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서서히 흐지부지되어 갔으며, 영국의 약속만 믿고 이주한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을 놓고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한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한 역사적 이유인 영국의 희대의 부동산 삼중계약이자 사기인 맥마흔 협정과 밸푸어 선언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영국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외교정책적인 부분으로만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 절묘한 정책입니다. 그리고 그런 외교정책은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소국한테 씁니다. 우리 정부도 이런 부분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밸푸어 선언이 흐지부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건국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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