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1. 18:32ㆍ한국사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 처음 후쿠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참배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왜 후쿠시마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 것일까요?? 그리고 원폭으로 희생당한 한국인 분들은 왜 히로시마에 있었을까요?? 오늘은 왜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후쿠시마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이유
1937년 일본의 중국 침공으로 중일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어나고 히틀러가 프랑스를 점령한 사이에 일본은 프랑스의 식민지 베트남을 점령합니다. 그러자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끊었고 이에 일본은 협상을 위해 하와이 진주만을 습격합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큰 오판이었고 결국 미국은 선전포고를 하고 태평양 전쟁을 시작합니다.
미드웨이 해전서 승기를 잡은 미국은 일본을 궁지로 몰아갔고 무조건 항복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내부 정치적 상황으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거부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이러자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만든 원자폭탄을 군수공장이 밀집된 히로시마에 투하하기로 합니다. 1945년 8월 6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항복을 하지 않자 나가사키에 한발 더 투하합니다.
그런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군수 도시였기에 강재로 징집된 학도병들과 강제 끌려와 노동에 시달리다가 원폭을 맞은 안타까운 한국인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또한 원폭 투하 후에 일제에 의해 잔해 제거에 우선적으로 강제동원되어 피폭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당시 히로시마 총 인구 약 42만 명 중 9~16만 명이 수개월 내에 사망했는데 히로시마 인구 중 약 14만 명(3분의 1 정도)은 조선인이었으며 그중 3만 명이 사망, 생존 2만 명 중 1만 5천은 광복 후 귀국, 5천 명은 일본에 잔류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피폭자 후손 등을 모두 합친 히로시마 피폭자 총 집계 74만여 명 중 10만 명 정도가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부상자들은 일제에서는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고, 이후에도 제대로 치료도 제공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습니다.
게다가 일제는 나가사키 앞바다 군함도 탄광에서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했던 조선인들을 원폭이 터진 나가사키에 강제로 다시 끌려가 잔해를 치우는 작업에 동원 시키는 끔찍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아무런 방호복 없이 맨몸으로 사역을 당했는데, 당연하게도 많은 이들은 오래지 않아 피폭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물론 당시는 방사능 피폭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 자체를 비난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된 노동과 원폭이 터진 곳에서 강제로 노역을 시키는 것은 반인륜적 행위입니다. 실제로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피가 계속 분출했다고 합니다. 이에1970년 4월 10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히로시마현본부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강요당한 영혼들을 편히 잠들게 하고, 원폭의 참사를 두 번 다시 되풀이 않기를 희구하면서 평화의 땅 히로시마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했습니다.
즉 한국인 원폭 희생자 분들은 바로 강제징용과 학도병,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 입니다. 그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온갖 착취를 당하고 원폭에 희생까지 당하신 일본이 만든 희생자 분들입니다. 이러한 희생자 분들께 일본은 사죄하고 반상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후쿠시마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진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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