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6. 01:00ㆍ유래
오늘은 6월 6일 현충일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분들께 감사하고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현충일은 왜 6월 6일이며 대체공휴일이 아닌 걸까요?? 오늘은 현충일의 유래와 대체공휴일이 아닌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현충일의 유래
현충일(顯忠日)의 현충은 '충렬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1707년 건립된 현충사에서 유래했습니다.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폐를 모신 사당으로 원래 이순신 장군에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남도 아산에 있었으나 1706년(숙종 32년)에 지방 유생들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호국 정신과 애민 정신을 기리자는 뜻에서 사당을 세울 것을 조선 조정에 건의했습니다. 이에 이듬해인 1707년 숙종의 어명하에 지금의 아산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기리고 나타낸다는 뜻에서 '현충(顯忠)'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워지게 되었고 이후에는 충무공의 공로와 업적을 기리는 성역으로 거듭났습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매년 6월 6일 민족과 국가의 수호 및 발전에 기여하고 애국애족한 분들의 애국심과 국토 방위에 목숨을 바친 모든 이들의 충성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일의 이름을 '충렬을 드러내는 날'이라는 뜻으로 현충일이라고 지었습니다. 1956년 4월 25일에 공포된 '현충기념일에 관한 건'(국방부령)으로 '현충기념일'이라고 불리다가, 1982년부터 개정 '각종기념일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으로 말미암아 해당 규정상의 기념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충일이 6월 6일로 지정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릅니다. 제정 당시 언론보도는 물론, 국무회의 기록에서도 정확한 지정 이유를 밝혀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유력한 가설들이 있는데 현충일을 6월 6일로 제정한 이유에 대한 가설 중 유명한 것이 바로 '망종 유래설'입니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 망종을 중시했고, 고려시대부터 망종 날에 사망한 군사를 추모했으며 고려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현종이 1014년 6월 6일 사망한 군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라는 교서를 반포했는데 마침 1956년 망종이 6월 6일이었기 현충일을 6월 6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망종 유래설"은 사실상 아무런 역사적 근거가 없습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농경사회에서 망종이란 절기를 중시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을걷이할 곡식을 파종하는 마지노선으로서 중시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비롯해 한국민속학 대백과사전에서 소개하는 망종 때의 세시 풍속은 첫 수확한 보리를 먹고 건강을 지키려 했다거나, 망종날 날씨를 통해 점을 쳤다 정도지 국가보훈처나 각계 전문가가 주장한 제사 지내는 풍습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망종에 전사한 병사들의 뼈를 묻었다거나 제사를 지냈다는 사료들은 있습디다만 의례적인 풍습은 아니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중론입니다.
또한 망종 때 고려시대 전사한 군인을을 추모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고려 현종 5년(1014년) 6월에 반포한 교서에 근거했는데 국가보훈처 등은 해당 교서를 1014년 6월 6일에 반포한 것에 유래해 현충일을 6월 6일로 정한 것이라 설명합니다. 하지만 해당 교서는 양력이 아니라 음력 6월 6일에 반포한 것으로 이 날을 현재의 그레고리력으로 변환하면 양력 7월 5일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려 현종이 반포한 교서는 향후 매년 정기적으로 사망한 군인을 추모하는 것을 정례화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타지에서 사망한 병사와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종의 매뉴얼을 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현충일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광복 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기념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1905년 11월 17일, 일제가 우리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그 치욕스러운 날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9년부터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승만 정부는 이미 있던 기념일을 놔두고 역사적 의미도 부족한 근거를 대면서 6월 6일로 제정한 이유는 뭘까요??
저는1950년 6월 25일, 민족사적으로 제일 비통하고 참혹한 6,25 전쟁이 발발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독립운동가 분들 보다는 6.25 전쟁 참전용사 분들을 추모하는 날이 필요했으며, 6월 중 적당한 날을 찾다 보니 그나마 사료적 의미가 있는 6월 6일로 제정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료를 찾다보니 6월 6일에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1949년 6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의 묵인 아래 친일파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해체시켜 버립니다. 이때 활약한 김창룡이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들을 소위 빨갱이로 몰아 숙청하는 역할을 도맡아 합니다. 그리고 그 정적들 대부분이 훌륭하신 독립운동가 분들이셨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암튼 그러던 김창룡이 1956년 1월에 암살당했고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김창룡의 공을 기리도록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2달 후 갑자기 현충일을 6월 6일로 제정합니다. 그래서 김창룡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해체시킨 것을 덮으려고 현충일을 6월 6일로 제정한 이유가 아니냐 라는 합리적인 추정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 또한 명확한 역사적 근거가 없는 추정에 불과합니다. 이외에도 현충일의 유래에 대해 다양한 가설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충일의 유래는 망종의 전통적인 풍습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참극인 6.25 전쟁과 반민특위 습격사건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을거 같습니다. 그런데 현충일은 왜 대체공휴일이 아닌 걸까요??
2. 현충일이 대체공휴일이 아닌 이유!!
우선 현충일은 법정기념일이자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다만 법정공휴일이기는 하지만 국경일이 아니라 정확히는 국가 추념일입니다. 즉 국경일은 말 그대로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이지만 추념일인 현충일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기에 절대 국경일로 봐서는 안됩니다. 이래서 현충일은 대체공휴일이 아닌 겁니다.
물론 현충일을 대체공휴일로 지정하자는 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공휴일 제도의 취지는 국민들의 휴식권을 보장하여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증진시키는 게 목적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현충일을 대체공휴일로 지정하게 된다면 국민들의 행복한 삶과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령 분들을 추모하는 날이 휴일이니 하루 더 쉬자는 겁니다. 즉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놀기 위해 부모님 장례를 하루 더 치르겠다는 소리와 똑같다는 겁니다.
오늘은 현충일의 유래와 대체공휴일이 아닌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추모하는 현충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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