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5. 02:07ㆍ한국사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국권피탈로 36년 간의 일본의 강압적이고 폭압적인 식민 통치하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이한 날로서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에 해당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또한 북한에서도 광복절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되어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념하는 게 맞을까요?? 또한 왜 해방절, 독립기념일, 정부수립일이 아닌 광복절로 부르는 이유는 뭘까요?? 오늘은 광복절의 뜻과 의미, 그리고 광복절의 건국절 논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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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복절의 뜻과 의미
광복절의 광복은 빛 광(光) 자의 회복할 복(復) 자를 사용하여 한자를 직역하면 빛이 회복하다는 뜻으로 1910년 일제에 의해 강탈당하여 잃었던 우리 민족의 주권을 다시 되찾고 마치 암흑과도 같았던 일본의 강압적이고 폭압적인 식민 통치하에서 벗어나 빛의 시대로 접어든 것을 뜻합니다. 즉 광복절의 뜻은 우리 민족의 엄혹하고 어두운 시대인 일제강점기를 끝내고 우리 민족의 주권과 자유를 되찾아 밝고 빛이 나는 시대가 열린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8월 15일을 언제부터 광복절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사실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1주년이 되던 1946년 8월 15일, 남한과 북한에서는 각각 ‘해방절’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심지어 1948년 8월 15일 해방절에 해방 제3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보도한 기사도 있습디다. 이처럼 남북한에 각각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8월 15일은 광복이 아닌 일본의 강압적이고 폭압적인 식민 통치하에서 벗어났다는 해방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해방절이 ‘광복절’로 바뀐 것은 1949년 10월 정부에서 4대 국경일을 제정한 때부터였습니다. 북한도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해방절을 ‘민족해방기념일’로 이름을 바꾸어 기념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이처럼 국가의 주도 아래 같은 시기에 동일한 공간에서 경험한 일을 각각의 정부에서 달리 기억하도록 하고 있습디다. 남북의 정부가 자신들의 역사성에 맞게 각자 ‘하나의 기억으로 통일하는 작업’은, 다른 기억을 배제하는 과정을 동반한 분단시대의 ‘기억의 역사화, 집단화’ 작업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광복이란 용어가 확정적으로 쓰이게 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남북한의 체제 우월성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남북한 정권 중 어느 쪽이 더 ‘민족사적 정통성’이 있는가를 증명하던 치열한 체제경쟁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해방이란 용어를 쓰면 사용하는 당사자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80년대 학생운동권의 여파로 진보적 내지는 좌파적이라는 정치적 성향이 덧씌워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치중립적이란 의미에서, 아니면 정치적 색깔이 덧씌워진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싫어 ‘8.15’라는 단어를 차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정치적 색안경을 낀 시선은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한 이후 들어 세계적인 차원에서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남북 화해 국면이 열리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지금은 광복과 해방이란 용어가 혼용되고 있지만, 정치적 의미와 무관하게 두 단어를 국문학적으로 뜻풀이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디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전적인 의미에서 광복은 ‘빛을 되찾은 것’이란 뜻으로, 우리에게 있어 빛은 주권을 의미하므로 잃었던 주권을 되찾았다는 의미이며 해방은 ‘속박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란 뜻으로, 우리를 속박한 일본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광복이란 말에 능동적이고 정신사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뜻풀이를 하는 데 비해, 해방이란 말은 수동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용어로써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전적인 의미가 내포되었든 사전적인 뜻에 충실히 한다면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의 날이며, 1948년 8월 15일은 광복의 날이 됩니다. 그런데 1948년 8월에 세워진 대한민국은, 잃어버린 주권국인 대한제국을 다시 찾은 국가로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했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기에는 불완전한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역사용어로써의 불완전함은 해방이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납니다. 1945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일본군에게 항복을 접수한 직후부터 한반도는 사실상 미국과 소련의 점령지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군대가 해방군인가 점령군인가 라는 역사적이고 가치판단을 논하기 이전에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소련과 미국의 군대가 한반도에서 와서 점령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입니다. 미군은 군정으로, 소련군은 직접적 명령보다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여 한반도를 통치했습니다. 이렇듯 근본적으로 접근한다면 독립 및 해방과 광복이란 용어 가운데 어떤 단어를 취사선택해서 사용하든 역사학적으로 완벽한 단어는 없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강대국들의 이익으로 분단된 국가라는 현실을 먼저 주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분단이 우리의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철저한 미국과 소련의 이익 때문이었고, 궁극적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독립 및 해방과 광복 그 어떤 용어도 완전한 역사용어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광복의 의미를 보면 광복은 사전적으로 주권을 되찾았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정부수립도 의미하며 현대사학자 서중석 교수의 견해처럼 광복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 형성과 정치적 자유 등 민주주의의 맹아를 형성했다며 독립 그 이상의 의미를 두기도 합니다. 다만 1945년 8월 15일 이후 미국과 소련의 의해 사실상 한반도는 점령지로 되었고 이 불완전한 해방은 결국 민족을 분단을 야기기켰습니다. 즉 광복절은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되어 출범한 날인 것과 더불어 민족의 분단이 시작되던 날로도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렇듯 광복절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의미의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주장이 제기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념하는 게 맞을까요??
2. 광복절의 건국절 논란에 대하여
최근 정치권과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주장이 제기되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논란을 뛰어넘어 정쟁화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건국절은 한 국가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사실을 공표함으로 한 국가의 존재 이유와 정통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날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탄생, 즉 대한민국 건국을 어느 시점으로 할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는데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보는 측과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보는 측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국제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1948년이 맞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1919년이 맞습니다. 언뜻 보면 무의미한 논쟁일 수 있지만 건국 시점에 따라 민족사적 정통성과 북한과 임시정부에 정의가 변함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1919년 4월 11일, 즉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으로 보는측은 그 근거로 제헌헌법과 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3.1 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점, 대한민국의 국호를 처음 사용했고 민주공화정을 채택했으며 외국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선포했으므로 임시정부는 국가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국민, 주권, 영토의 국제법상 국가의 기본요소가 실질적으로 없었고 국제사회에 승인을 못 받았으므로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물론 조선 8도와 러시아·미국·중국령을 대표하는 33명의 대의사(代議士)를 1000여 명의 독립지사가 모여서 선출하여 이들이 제정한 임시 헌장을 기반으로 선포되었으며 임시정부는 삼권 분립을 지향하는 민주공화제 정부로, 입법 행위는 물론 일정 한도의 주권 행사와 사법 행위를 하였다는 점에서 엄연히 정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행정과 입법 작용을 할 수가 없었기에 국가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으로 보는 측은 근거로 임시정부는 국가의 기본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를 갖추지 못했으며 1948년 UN 총회에서 한반도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했기에 오히려 1919년을 건국으로 보면 임시정부에 북한 정권을 수립한 공산주의자들이 있으므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건 북한입니다. 또한 한때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던 대만이 중국의 압력으로 퇴출된 사례만 봐도 국제적 인정은 각국의 이해관계의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대만은 국가의 기본요소와 국제적 승인을 받았었음에도 변해버린 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국제법상 국가가 아닙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기본요소와 국제적 승인만으로 국가 성립을 판단하는 것도 다소 부적절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을 언제로 봐야할까요? 그 해답은 1919년 형식적 건국을 하여 1948년 실질적 건국을 한 것입니다. 즉 대한민국 건국을 어느 한 시점으로 볼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 9월에 제정한 임시헌법에 따라 해방 후 한반도의 대통령제 민주공화국 수립을 전제로, 국민의 선거로 국회를 구성하여 임시헌법에 기초한 제헌헌법을 제정함으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것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국토는 한반도 전체이고 북한 주민들도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향유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 국가인 이유이며 이를 부인하고 북쪽 영토를 불법 점거한 북한 정권은 반국가단체이므로 우리의 적입니다. 물론 이럴 경우 북한 정권은 태생적으로 존재 자체가 불법이므로 정부는 당연히 불법단체와 대화 및 협상에 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현행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태생부터 불법이므로 남침을 사과하고, 인권을 개선하고, 북핵을 폐기해도, 아니 지상낙원을 이룩해도 불법단체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불법단체인 이유를 현 북한이 펼치고 있는 남침행위, 국가적 불법행위, 반인권행위, 핵개발 등 전쟁위험행위, 국가적 빈곤과 기아 등으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사적으로 북한 정권은 불법단체 그 이상으로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동족을 학살한 6.25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김두봉, 김무정 등은 대한민국의 원흉이자 구족을 멸할 민족의 역적이며 이것이 우리가 대북정책을 펼칠 때 망각하지 말아야 할 대원칙입니다. 다만 더 이상 한반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박정희, 노태우 정부 때 7.4 남북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과 상호불가침 및 상호체제 인정을 기반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에 남북대화 및 인도적 지원을 하여 헌법 제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적화통일을 막기위해 징병제 및 한미 방위조약은 유지하여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북한이 비핵화하도록 제제와 지원정책을 한미공조하에 구사해야 합니다. 비핵화 후 남북경협 및 문화적 교류를 촉진하여 남북간 이질성을 극복하는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과 미세먼지 등의 국제적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간 북한 정권이 저지른 만행의 사죄와 배상 및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즉 1919년 4월 11일을 대한민국의 형식적 건국으로 인정함으로써 민족사와 국제법적인 정통성을 확보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여 통일을 이루려는 노력은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사, 정부수립 축사에서도 일관되게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으로 힘주어 말하였을 뿐만 아니라, 1948년 정부수립을 건국이라고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연호 대신 단군기원을 사용하려는 국회와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상고사에서 국가의 기년법을 끌어올 필요가 없다며 1919년을 원년으로 하는 대한민국 연호 사용을 고집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승만이 이끄는 초대 행정부 역시 1948년 9월까지 모든 공문서의 연도 표기를 “대한민국 30년”으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1948년을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게 되면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에 의한 남한만의 정부가 되고 북한은 소련 군정에 의한 북한만의 정부가 되어 별개의 정부가 수립이 되어버립니다. 위 경우 헌법 전문에 밝히고 있는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정통성과 함께 한반도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명분을 버리게 되고 북한도 한반도를 통치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민족사와 국제법적인 정통성을 줄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의 강압적이고 폭압적인 식민 지배 시절에 반인륜적 극악무도한 통치행위에 대해서 국제법적인 책임과 배상을 받을수 있도록 하기 위한 측면도 있습니다. 즉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인 국가이며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본 것입니다. 이렇듯 건국절은 어느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봐야 합니다.
오늘은 광복절의 뜻과 의미, 그리고 광복절의 건국절 논란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민족사적 정통성을 가지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진정한 광복이자 진정한 대한민국의 건국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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