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이유와 차례와 제사와의 차이!! 차례의 뜻과 유래!!

설날과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이유와 차례와 제사와의 차이!! 차례의 뜻과 유래!!

2023. 9. 28. 12:44유래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과 추석에 빠질 수 없는 풍습이 있습니다. 바로 차례입니다. 이 차례 때문에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야 할 명절 연휴에 가족들이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일이 발생합니다. 여성 분들은 차례 음식 하시느라 황금 같은 연휴에 쉬지도 못하고 고생하고 종교가 다르면 차례를 지내느니 마느니로 얼굴을 붉히며 다툽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추세가 차례를 안 지내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것이며 차례와 제사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설날과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이유와 차례와 제사와의 차이, 즉 차례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설날과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이유와 차례와 제사와의 차이!! 차례의 뜻과 유래!!

설날과 추석에 대표적인 풍습인 차례를 지내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먼저 제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제사(祭祀)란 신이나 신령, 죽은 사람의 넋 등에게 제물을 봉헌하는 의식을 통칭합니다. 따라서 고대 종교의 신전 제의, 가톨릭의 미사 등도 일컫는 폭넓은 개념이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유교적 조상제사의 의미로 쓰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나 제사에 해당하는 조상 추모 의식은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제사라 함은 유교적 제례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 압니다. 유교식으로는 기본적으로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제주'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4대 조가 넘어가면 매안(埋安)이라고 하여 신위를 사당에서 옮겨 땅에 묻고 원칙적으로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이후 5대조 이상의 조상은 개개인의 기일이 아닌 음력 10월에 동시에 기리는 흔히 시제라고 하는 묘사(墓祀)를 지내거나, 큰 공을 세운 조상의 신위는 시대가 지나도 옮겨 그만두지 않고 계속 제사를 지내는 불천위(不遷位) 같은 예외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러한 제사는 고대 중국에서부터 전해져왔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사는 신이나 신령, 조상 등에게 봉헌하는 의식은 유교뿐 아니라 수많은 종교에서 관찰되며 중요시됩니다. 유허비 지중해 문화권의 고대 종교들에서는 훌륭한 제사는 '경건함'의 주요한 예시였고, 동아시아에서는 갑골문에서 수많은 제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종교가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인식되지만, 종교가 공적 영역으로 인식되던 고대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신심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제사가 자연스럽게 중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제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자 문화권 바탕에 한반도의 지역적 특성이 섞여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 상나라(은나라)의 왕 조갑이 주변 토착신을 배제하고 조갑의 직계 조상만 섬기는 조상신 풍습을 만들게 되는데, 이러한 조상을 섬기는 문화에서부터 제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상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주나라는 위에서 조갑이 퍼뜨린 풍습을 따라 상나라의 제사방식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상나라의 전 지도층을 제후로 임명해 상나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계속 이어가도록 했습니다. 이것도 다른 가문의 제사를 끊기게 하면 그 사람에게 제사가 끊어진 조상귀신들이 재앙을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춘추전국시대 떠돌이 생활을 하며 왕들을 가르치던 공자가 끔찍한 인신공양을 막기 위해 상나라 제사 문화를 재정비했습니다.
 
인신공양을 막기위한 수단으로써 행해진 제사는 중, 근세에 이르러 유교와 결합하여 조상숭배의 의미를 갖는 종교적인 제도로 고착화되었습니다. 또한 종교적 의미를 가지면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이후에도 중국 중원을 차지한 황제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며, 자신의 조상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권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다만 스스로를 제후국을 자처한 조선의 왕은 하늘에 대해 제사를 지낼 수 없었고, 왕조의 조상신(종묘)과 땅의 신(사직)에는 제사를 지냈으며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또한 가정에서는 효의 의미를 가져 가문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였으며 종교적 면은 사후세계의 인정을 통한 유교 특유의 간접적 영생법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또한 고려, 조선 전기까지는 유교적 영향을 받았어도 아들이던 딸이던 상관없이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받고 제사의 주체에서도 남녀차별이 없었습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출가외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남녀 구별 없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셨으며, 기혼 남성이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시집간 누나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즉 한족의 명나라가 만주족 청나라한테 멸망당한 이후 성리학적 명분론에 빠져있던 양반들에 의해 되지도 않는 소중화 의식이 강해지면서,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장남이 아버지의 재산 2/3을 받고, 나머지를 다른 아들들이 나누고, 딸은 받지 못하는 인습(因習)이 나타났고 집성촌일 경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사 중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에 간단히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고 부릅니다. 간단히 말해 특별한 명절, 설날과 추석 등에 한해서는 제사가 아니라 차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즉, 차례는 제사에 포함되는 개념이며, 제사의 특별한 케이스가 차례 입니다. 그러니 설날이나 추석에 지나는 제사도 '제사'라고 불러도 무방하며 딱히 틀리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제사를 차례라 부르진 않으며, 그렇게 부르는 것은 틀린 표현입니다. 이것이 차례와 제사와의 실질적인 차이입니다. 
 
일반적으로 현대사회에서 제사라고 하면 기제사를 가리키는데, 기제사란 죽은 사람의 기일에 그 사람만을 위해 지내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기제사든 차례든 보통 제주 위로 돌아가신 4대 조상까지 지내는 건 마찬가지지만, 명절 등에 지내는 차례는 4대 조상까지 연달아 대접하는 제사를 의미하므로, 기제사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차례는 언제부터 지냈을까요?? 역사적으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추석이 시작된 신라에서 지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추석의 유래에서 언급했듯이 달을 숭배하는 애니미즘적 신앙에서 추석이 시작된 것이기에 차례는 달에 대한 제사에서 나타난 풍습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역사적 기록으로 보면 차례는 삼국사기 제사지의 내용이나 중국의 차가 전해지고 재배한 역사를 감안하면 명절 제례로 신라시대부터 지낸 것으로 추정되고, 이를 토대로 원래는 차를 올리는 다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차례의 실질적인 뜻을 보면 차를 올리는 예의라는 뜻입니다. 또한 불교가 국교이던 신라, 고려시대와 차라는 부분을 고려하면, 세시풍습 및 계절제와 불교식 성향이 더해져서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한 조선시대가 되면서 불교식 세시풍습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세시 풍습도 유교식으로 변화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예법의 기본 취급받는 주자가례 중 참례와 천신례는 세시의 제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때 초일에는 술과 차를, 그리고 보름에는 차만을 올렸습니다.
 
다만 술 대신 차를 올리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교적 교리가 강하다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석회수를 마사지 못하고 아열대 기후가 있어서 차 생산과 문화가 발달한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 차는 엄청난 고급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아무래도 중국에서는 차를 올리지만, 조선은 술이죠"를 외치면서 차례상에서 차를 빼고 술을 채워 넣었습니다. 이후 명절에 지내는 제사의 다른 이름이 된 것은 조선 후기 성리학적 성향이 강해진 영향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차례는 유교에서 권장하는 종교적 전통이 아니라 토속신앙과 불교 및 유교의 문화가 섞인 전통적인 풍습입니다. 또한 차례의 뜻에서 보듯이 원래 차례는 간단한 상차림으로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습니다. 그런데 추석에 제사상을 차리듯 차례상 차리기를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양난 이후 조선 후기부터 공명첩과 족보 매매 등으로 돈을 주고 양반 신분을 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로가 마치 오래된 양반 가문인것처럼 추석에도 제사상 차리듯 차례상을 차려 과시를 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이후 1939년 조선총독부가 민족 문화 말살 통치에 일환으로 의례준칙을 만들어 1년에 31번 지내던 차례를 설날과 추석만 지내도록 간소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박정희 정부가 1969년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설날과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이유와 차례와 제사와의 차이 및 차례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차례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 풍습입니다. 절차와 형식의 얽메이는 하례허식의 차례보다는 풍성한 마음으로 지내는 차례가 더 뜻깊은 차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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