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의 뜻과 유래!! 개천절이 양력으로 10월 3일인 이유!!

개천절의 뜻과 유래!! 개천절이 양력으로 10월 3일인 이유!!

2023. 10. 3. 01:48유래

오늘은 10월 3일 개천절입니다. 개천절은 대한민국 5대 국경일에 해당하는 뜻깊은 날로서 우리 민족의 시작을 알리는 고조선의 건국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고조선의 건국일은 양력 10월 3일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개천절을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기념하는 걸까요?? 그리고 역사적으로 개천절이 10월 3일이 맞을까요?? 오늘은 개천절의 뜻과 유래, 그리고 개천절이 양력으로 10월 3일인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개천절의 뜻과 유래!! 개천절이 양력으로 10월 3일인 이유!!

개천절(開天節)은 한자로 열 개(開)의 하늘 천(天) 자를 사용하여 '하늘이 열린 날'이란 뜻으로서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 왕검이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하여 역사를 개창한 것을 기념하는 날 압니다. 날짜는 10월 3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 법정 공휴일이면서 5대 국경일이므로 태극기를 게양합니다. 고려시대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따르면 기원전 2333년에 환웅의 아들 단군이 태백산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우리 민족의 최초의 국가인 단군의 고조선(단군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날로 개천절이 지정되었지만, 역사학적으로 10월 3일이 고조선의 건국일인 것은 아닙니다. 제아무리 삼국유사의 기록되어 있더라도 고려시대에 기록이기에 고조선의 정확한 건국일자는 불명이며 일자나 월은커녕 건국 연도조차 불투명해서 학설마다 몇 백 년씩이나 차이가 납니다. 아마도 다른 청동기 시대 국가처럼 부족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음력 10월 3일 자체와 고조선 건국 사이에는 어떠한 역사학적으로 관련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구한말 독립운동가 나철이 만든 대종교의 관점에서는 "한배님이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에 강림하여 125년간 교화시대를 지내고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부터 치화(治化)를 시작했다."는 문장을 근거로 하는데,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457년(갑자)에 강림했고 기원전 2333년(무진)부터 통치화를 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렇게 개천절이 역사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천절이 국경일로 제정된 이유는 나철의 대종교와 전통적으로 음력 10월은 특별한 달로 여겨졌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음력 10월은 동짓달(음력 11월) 바로 전 달로, 12간지로 따지면 마지막 해(亥)에 해당하는데 이 즈음이면 농사도 끝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느낌도 강하여 이 때는 민간에서도 상달이라 하여 집집마다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나철의 대종교 이전에 전국적으로 10월 3일을 단군이나 개천 또는 민족의 개창과 연결지어 생각한 사례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조선 후기 일부 지방에 '음력 10월 3일에 단군에게 제사 지내는 향산제라는 풍속이 있다'는 기록이 있고, 19세기 문헌인 무당내력에는 "상원갑자 10월 3일에 신인이 박달수 아래로 내려오니 단군이라 한다. 신교(神敎)를 세우고 백성들을 가르쳤다."라는 구절이 있으며, 김염백(金廉伯)이 평안도에서 1890년대에 일으킨 단군신앙 집단에서도 음력 10월 3일을 단군의 탄생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조선 후기에 평안도나 함경도 등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단군과 음력 10월 3일을 연결 짓는 민간신앙이나 의식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게 역사학계의 추론입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태조 1년(1392년)의 8월 11일 2번째 기록에는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 "평양부(平壤府)로 하여금 때에 따라 제사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또한 조선 왕조의 제사예법에서는 상순, 즉 1일부터 10일까지는 존귀한 제사를 드리는 날, 중순은 사대부, 하순은 그 이하가 제사를 지내는 날로 삼았으며 왕실 제사 예법에도 상순에 드리도록 정한 제사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 옛 고대 국가들의 제천 행사도 10월에 열렸습니다.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해 고려하면 아마도 나철은 단군과 음력 10월 3일을 연결짓던 조선 북방 지역의 민간신앙이나 기존의 고사 등 우리 민족의 전통을 참조해서 단군을 믿는 대종교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종교에서 1909년 처음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를 발표할 때 음력 10월 3일을 경절(慶節)이라고 부르며, "단군 대황조께서 나라를 세우고 참 도를 세우신 지 4237년, 광무(光武) 8년(1904)에 백두산에서 백봉(白峰)이라는 인물에게 단군교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1910년에 나철은 "환인이나 환웅, 환검이라 함은 전부 단군 한 분을 나누어 불렀을 뿐"이라고 하여, 단군을 적극적으로 천신(天神)과 일체화하고, 환웅이나 환인과 따로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대종교의 신앙체계 안에서 단군을 천신과 일체화함으로써 음력 10월 3일에 전통적인 제천축제일의 이미지까지 덧씌웠습니다.

 

이후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중국으로 망명한 대종교계 세력과 교류하였으며, 자체적으로 음력 10월 3일을 기념하여 경축하였습니다. 다만 그 명칭은 대종교의 명칭인 '개천절', 혹은 '개천경절'이란 단어를 피하고 '대황조성탄 및 건국기원절(大皇祖聖誕及建國紀元節)'이라고 하였고, 이 날 임시정부 국무원이 주최하는 축하식이 열렸습니다. 이러한 명칭을 붙인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근대 국가에 걸맞게 단군을 천신으로 이해하는 대종교 측 인식을 피하려 하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기에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다만 임시정부 출범 당시에는 요인 가운데 다른 종교 신자들도 제법 있었던 데다, 단순히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도 단군을 인간이 아닌 천신으로 이해하면 자칫 단군의 실재 여부에 대한 문제에 접근하게 될 우려가 있었으며, 이것이 공연히 논쟁을 자초할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종교의 용어인 개천절을 기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에 국경일 제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정권 수립으로 분단과 이념 논쟁으로 나라가 혼란하고 어수선하여 아무런 국경일을 제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듬해인 1949년에야 비로소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으며 법률 제정을 앞두고 당시 문교부에서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할 수 있는지 검토하였습니다. 하지만 심의 결과 환산할 수 없다고 나왔거니와 '10월 3일'이라는 날짜 자체가 중요하단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1949년 10월 1일에 법률 53호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이름하여 국경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 당시 문교부는 음력 10월 3일을 굳이 양력으로 환산하려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에는 태음력이 '비과학적인 역법'이라고 국제적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쓰지 말자는 것이 정부 공식 입장 이었습니다. 이 시절에는 설날 연휴도 양력 기준으로 쇠었고 심지어 추석도 양력으로 바꾸려고 했으나 음력 8월 보름을 양력으로 환산하자니 도무지 답이 안 나와서 마지못해 추석에만 음력 사용을 인정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민간의 음력 사용 관행을 없앨 수는 없어서 결국 정부도 포기하고 1970년대 지정된 부처님 오신 날은 음력을 따르게 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설날 연휴도 양력 기준에서 음력 기준으로 바꾸었습니다. 당시 대종교에서는 음력을 기준으로 했지만, 정부에서 양력 10월 3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자 이를 존중하여 음력 10월 3일과 양력 10월 3일 양일을 모두 기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전산의 발달로 달력 계산이 간편해지면서, 기원전 2333년의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자는 주장도 나타났지만 이것은 실제로 적용시키기에는 기술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태음력 자체의 문제로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된 음력은 단 한 가지의 역법이 만세불변 쓰인 것이 아니고, 청나라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천문학 지식을 더하여 만든 시헌력을 기준으로 조정된 것입니다. 문헌자료로 상고되는 중국의 옛 역법만 보더라도 시헌력과는 또 기준이 다르고, 옛 역법으로 올라갈수록 이 차이가 커집니다. 하물며 문헌자료도 없는 기원전 2333년의, 그것도 중국이 아닌 고조선에서 사용했을 역법은 고증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게다가 기원전 2333년이라는 일자 자체도 부정확한 마당에 음력 날짜도 17세기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시헌력을 따라 계산해야 한다면, 사실상 아무 가공의 일자를 하나 고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기원전 수천 년 쯤 되면 산술적 역법과 천문학적 역법 사이의 오차가 너무 커져,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달력 프로그램은 거의 의미가 없고 천문대에서 해와 달의 움직임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천문연구원도 음양력 변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조선 건국 직전인 1391년까지로 상한을 정하였습니다. 계산 시점에서 멀어질수록 해와 달의 정확한 움직임을 계산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실제 관측결과를 바탕으로 계산을 보정하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대충 구할 수 있는 전자달력은 이런 천문학 보정을 무시하고 하루를 더하거나 빼면서 세는 것으로, 미래로 갈수록, 혹은 과거로 갈수록 천문학적 오차가 코집ㄴ. 다.

 

이러한 문제점에 덧붙여 역사적으로는 정확하고 필연적인 의미가 없는 일자 때문에 공연히 인력과 비용을 지출하느니, 어차피 개천절이 반드시 음력 10월 3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없기 때문에 당시 문교부의 심의에서는 숫자 자체에 초점을 맞추자는 결론을 낸 것입니다. 이것이 개천절이 양력으로 10월 3일인 이유입니다. 즉 개천절은 역사학적으로 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시조와 시작을 되돌아보는 날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개천절의 뜻과 유래, 그리고 개천절이 양력으로 10월 3일인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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